[문화산책] 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 '조경'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다
[문화산책] 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 '조경'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다
  • 임동현 기자
  • 승인 2024.04.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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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장. (사진=임동현 기자)
'정영선 :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장. (사진=임동현 기자)

(내외방송=임동현 기자) 조경. '경치를 꾸민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뜻만 놓고 보면 마치 사람이 인위적으로 '경치를 꾸미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옛 선조들이 지었던 정자나 다양한 건물들을 보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공생하는 차원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전남 강진에 유배됐을 때 강진 땅을 바라보며 심신을 달래기 위해 지었던 '천일각', 산과 강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가 돋보이는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 등이 바로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 공생하는 건축, 그것이 바로 '조경'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사실 필자도 조경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맨 앞에서 말한, '사람이 인위적으로 경치를 꾸미는 것'으로 조경을 인식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뜻이다. 언제부턴가 자연 풍경과 동떨어진 건물이나 조각 등이 늘어나고, 자연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에 인위적인 공간이 조성되는 모습을 보면서 조경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조경의 진정한 의미를 깨뜨린 것은 바로 사람의 오만, 그리고 무지였다. 그리고 그 오만과 무지로 인해 우리는 조경의 아름다움과 필요성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자연을 꾸민다'는 말을 싫어하게 됐다.

바로 이 시기에 '한국 1세대 조경가' 정영선(1941~)이 돌아왔다. 그가 전하는 '사계절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한 영화 <땅에 쓰는 시>(정다운 감독)가 개봉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그의 삶과 종합과학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정영선 : 이 땅에 숨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열리고 있다. 식목일인 지난 5일 개막한 이 전시는 60여 개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대한 아카이브의 대부분이 최초로 공개되며, 각종 기록자료 500여 점을 한 자리에서 조망하는 자리다.

제주 오설록 이니스프리 전경, 2013, 사진 김용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주 오설록 이니스프리 전경, 2013, 사진 김용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아시아선수촌,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선유도공원, 서울식물원, 경춘선숲길, 두내원,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대전엑스포, 탑골공원 개선사업, 광화문광장 재정비, 예술의전당, 휘닉스파크, 제주 오설록, 국립수목원, 파주출판단지, 서울아산병원,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이 모두가 바로 정영선이 설계하고 표현한 조경의 대표작들이다. 

그는 조경을 '미생물부터 우주까지 생동하는 모든 것을 재료로 삼는 종합과학예술'로 생각한다. 국가 주도의 공공 프로젝트와 민간 기업이 의뢰한 정원과 리조트, 수목원과 식물원 등을 그는 '지사(地史)적 맥락'에 기반을 두고 구성한다. 한 마디로 자연과 건축의 대화, 자연과 건축의 어울림을 표현하려는 것이 그의 작품 세계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 전시를 한 줄로 요약하면 '꾸미지 않은 듯한 꾸밈'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챕터별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고 이들이 이루어진 과정들을 하나하나 살필 수 있지만 우리는 결국 '꾸몄으나 꾸미지 않으려했던' 정영선의 자연을 향한 시선을 느끼게 된다. 

전시마당에 조성된 정원. 전시 기간 동안 이 정원이 변화하는 모습도 하나의 작품이 된다. (사진=임동현 기자)
전시마당에 조성된 정원. 전시 기간 동안 이 정원이 변화하는 모습도 하나의 작품이 된다. (사진=임동현 기자)

지형을 바탕으로 작업을 했던 예술의전당과 휘닉스파크의 구상도, 정원의 전통적인 요소를 그대로 살린 호암미술관의 '희원', 숲의 풍경과의 어울림을 추구한 제주 오설록, 하천 환경 개선에 일조한 여의도샛강생태공원, 버려지거나 없어질 수도 있었던 철길을 살려 새로운 길을 창출해낸 경춘선숲길 등을 보면 '사람이 인위적으로 경치를 꾸미는 것'이라고 조경을 인식했던 생각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주차장이었던 공간에 숲을 조성했다. 이 곳에서 환자들은 마음 편히 가족들을 만날 수 있고 때로는 울적한 마음, 화가 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연일 계속되는 진료로 피곤한 의료진들도 이 곳에서 잠시 쉼을 찾을 수 있다. 조경은 이처럼 따스한 마음을 실현하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정영선 작가. (사진=임동현 기자)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정영선 작가. (사진=임동현 기자)

지난 4일 열렸던 언론공개회에서 정영선은 기자들에게 말했다. "한국은 하나님이 만드신 정원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연 그 자체가 하나의 정원이고 조경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1세대 조경가가 미래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발견했다. '자연 자체가 하나의 조경이다. 멋있게 꾸민답시고 그 아름다운 조경을 해치지 마라.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 너희들이 만들어야 할 조경의 미래다'.

이것이 궁금하다면 전시기간 동안 전시마당에 조성된 새로운 정원을 보면 된다. 그리고 서울관 야외 종친부마당에도 새로운 정원이 조성됐다. 인왕산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한국 고유의 자생식물을 심은 정원, 전시 기간 동안 변화되는 모습 역시 하나의 작품이 되는 그 곳이다. 이 전시를 '한 번만 보고 그냥 가기엔 아쉬울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시간이 가면서 정원이 어떻게 변하는 지를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 변화가 작품이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다. 그렇다면 봄을 지나 여름, 초가을로 갈 때의 정원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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